밑줄긋기_[공자&맹자 유학의 변신은 무죄: 강신주 지음]

공자 & 맹자 강신주 지음/김영사

이 책을 조금 넘겨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공자와 맹자를 조금의 결점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종교인이 아니라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 유학 사상은 ‘공자 왈’, ‘맹자 왈’이라고 해서 마치 절대적인 규범이라도 되는 양 권위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시선은 아마 몇몇 분들에게는 신성모독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식여행을 떠나며 - 유학 사상의 한계와 가능성

지난 일요일 남산도서관을 갈 일이 있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월요학교 맹자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맹자에 관해 나온 쉬운 책을 좀 찾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에서 골랐다. 이 책과 함께 전호근 선생이 쓴 [천하를 돌아다니다 맹수레 맹자]라는 책을 빌렸다. 두 책 가운데 우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열며, 저자의 첫 글에 눈이 간다. 저자 강신주는 첫 머리부터 공자와 맹자에 대해 ‘정직하게’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과연 정직하게 쓴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덧붙여 그러는 이유는 스스로가 종교인이 아닌 ‘철학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양 사상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도 논어나 맹자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 것이다. 성인이라 불리는 이들, 공자-맹자-주희를 비판적으로 읽기란 쉽지 않다. 주희야 워낙 욕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공자와 맹자를 씹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책이 나와서 세간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그 뿐이다. 아직도 이른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공자와 맹자의 위치는 견고하다. 이러한 시선은 텍스트를 읽는 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텍스트를 대하는 데 항상 베베 꼬아 볼 것은 아니지만 논어, 맹자를 읽은 데는 일단 존숭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그들의 사유를 적절히 판단 비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일단 호주제 폐지에서부터 문제를 시작한다. 호주제가 폐지되었을 때 거리로 나선 유림들로부터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숭고한 가치, 삼강오륜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 연원은 공자가 사모해 마지 않았던 시대, 즉 주나라로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주나라를 지탱했던 봉건제가 가족주의인 동시에 국가주의였다는 점, 따라서 주례(周禮)로 돌아가고자 했던 공자의 사유는 결국 국가와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이 한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유학이 오늘날에도 의미있다고 할 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필수적이다.

일단 저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유학의 역사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공자-맹자-순자-주희-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연속선 위에서 유학이 스스로 자기의 한계성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공자의 사상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 혹은 사상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을 밝히고자 한다. 다행이도 무리하게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결론이 궁금하다. 아직 읽을 양이 많이 남아 있기에 저자가 결론으로 내놓을 대답이 기대된다. 그가 밝힌 ‘신성모독’이 단순히 까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대답을 가지고 있을지,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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