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중국사상사 약론]_탄스퉁이 말하는 우정과 탈주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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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사상사 약론 천샤오밍 외 지음, 김영진 옮김/그린비 |
불교의 입장에서는, 임금.신하.부모.형제.권속.친척들을 모두 데리고 출가하여 계를 받고 법회에 모인다. 이것은 저 네 가지 윤리를 광범위하게 확장하여 친구의 윤리로 만드는 것이다. 붕우의 윤리만이 유일하게 존중할 만하다. 나머지 네 가지 윤리는 폐기하지 않더라도 자연 폐지될 것이다. 또한 나머지 네 가지 윤리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함을 밝히고 나서야 붕우의 윤리는 그것의 역량이 비로소 확대된다. 지금 중국이나 외국 할 것 없이 모두 변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오륜이 개혁되지 않으면 어떠한 도리나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어디도 시작할 지점이 없는데 하물며 삼강이겠는가!
206쪽: 2부_불법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인학』과 응용불학
탄쓰퉁(담사동, 譚嗣同)은 중국의 근대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그는 불과 서른 해 남짓한 인생을 살면서 중국 사상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책에 소개된 그의 글에는 그의 삶이 묻어난다. 명쾌하고 간결하되 힘을 잃지 않는다. 짧게 인용된 그의 글에 눈이 멈추었다.
교회 예배에서는 형제, 자매의 윤리가 지배한다. 일종의 새로운 가족이다. 인류 역사에 뿌리깊은 가족 이데올로기는 형태를 바꾸어 교회 안에도 살아 있다. 가족의 중심, 아버지의 자리는 목사의 것이 되고 만다. 교인들이 목사를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목사는 교인들의 아버지이다. 예배를 통해 구성된 변형된 가족, 즉 교회 공동체의 중심이다. 목사를 없앤다는 것은 공동체의 분열을 의미한다.
사실 목사없는 교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목사의 자리가 없어지더라도 교회는 존속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실험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있다. 중심이 사라진 관계.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중심성을 벗어난 우정의 윤리가 필요하다.
촛불의 파괴성은 여기에 있다. 중심이 없는 무수한 점들의 집합! 사실, 거기에서 외쳐진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보다는 그 현상 자체가 위험하다. 대오도 지도부도 없는 그 무리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국가의 위기 상황이란 바로 이것이다. 중심이 더 이상 중심일 수 없는 현실. 실제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치’는 이미 우리들 삶의 변두리에 걸쳐있을 뿐이다. 이명박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국가의 중심이 아니다. 그가 갖고 있는 대의성, 공공성은 잊혀진지 오래다. 그는 다만 권력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가가 아닌 권력자일 뿐이다.
광장의 촛불이 보여준 힘은 기독교인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단지 세속적인 정치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공간이 빚어내는 힘의 배치에 적응 할 수 없다. 기존의 예수 이미지를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일반 기독교인들은 끝까지 이명박 편일 것이다. 아마 이명박이 벼랑 끝에 몰릴 때도 그를 뒤좇을 이들은 교회안에 있으리라.
껍질을 깨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은 파괴의 고통 때문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 끊임없는 탈주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힘든 일이다.
수없이 겹친 봉건의 그물은 허공과 함께 끝이 없다. 처음에는 개인의 이익이라는 그물을 찢고, …… 마지막으로 불법의 그물을 찢는다. 진정 찢어 버렸다면 속박의 그물은 자연 없을 것이다. 참으로 그물이 없다면 찢을 만한 게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물을 찢는다는 것은 아직 그물을 찢어 버리지 못한 것이다.
206쪽: 2부_불법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인학』과 응용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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