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그녀가 해주는 위로. 지승호를 통해 듣다 (공지영, 지승호, <괜찮다, 다 괜찮다>, 2008)
2008/09/04 23:45
Posted by Hendrix Posted in " Reviews/Boo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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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다 괜찮다 - ![]() 공지영.지승호 지음/알마 |
공지영이 재수없다는 선입견에 대해
이래 저래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공지영도 아마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 인 듯한데, 내 주위에서도 "좌파"라 하는 인간들 "진보" 어쩌구 하는 남성들은 공지영을 싫어한다. 재수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인 듯한데.
2001년, 지금은 강진군수이지만, 당시에는 신임 교수였던 건대 정외과 황주홍 교수의 '현대사회와 이데올로기' 수업의 숙제 중 하나가 서평쓰기와 그와 관련된 문제풀이였는데. 그 때 선정된 책 중 하나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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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 공지영 지음/푸른숲 |
사실 그 때 어떤 느낌으로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는 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왜인지 모르게, 한 사람의 여자로서의 작가가 이런 '강한 오라'를 풍기면서 글을 쓸까 하는 질문 정도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냥 잘나가는 소설가로만 생각했고, 종종 그의 소설들에 대한 기사가, 그리고 그의 사생활에 대한 기사가(이건 정확히 기억은 못하는데, 참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은 항상 했다) 나올 때 보는 정도였다.
워낙 내가 '당찬 여자'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평균적인 한국사회의 남자들이 '당찬 여자'를 재수없어 할 때, 그런 여자들을 옹호해 온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그 범주에 있었고, 난 그녀를 옹호했다.
촛불 정국에서 우석훈이 공지영에 대해서 평가한 적이 있다(http://retired.tistory.com/139).
40대 남자들 중에서 공지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에서 취향의 문제는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들이 싫어하는 것도 존중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공지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가 이룬 성과는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는 마초 세계에서 꿋꿋하게 피어있는 들꽃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그녀가 제시했던 'politically correct'에서, '유연성'이라는 개념을 내가 배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공지영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 뚝심을 좋아하고, 그 강직함을 존경하고, 그 솔직함을 사랑한다.
(문체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공지영도 6.10 촛불 시위에는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발언권이나 영향력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겨우 빌빌거리면서 옆에서 구경하다가, 노래나 조금씩 따라부르는 정도 외에 내가 더 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틈틈히 촛불 문화제에 나가는 것은, 처음에는 머리 수 채워주려는 이유였지만...
몇 번 나가보면서 느낀 것이, 여기가 기운이 좋다. 영감이라고 표현하면 영감이고, inspiration이라고 몰입교육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고, 종교인들이 좋아하듯이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하여간 그런 것이 가득한 곳이다.
한국에서 순수한 사람들을 이만큼 무더기로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흔치 않다. 언젠가는 지금의 사람들이 또 타락하거나 또 부패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공지영도 촛불 문화제에 가끔 나와서 그 기운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남았던 앙금, 80년대를 지나고 90년대를 거치면서 종암세포처럼 들러붙은 상실감과 패배감 혹은 "그래봐야 별 거 없다"는 냉소,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지금의 촛불 문화제가 최고의 치유이며, 동시에 생기의 복원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 어리석은 생각에는, 공지영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녀의 문학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의 문학이 아직 30년은 더 갈 것이고, 그래서 언젠가 만개할 그녀의 문학을 위해서 이 공간에 같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공지영도 나온다면, 명박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빌빌거리는 나와 내 주변의 그지깽깽이들과는 달리,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예리함이 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회적 자산이다.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 '당찬 여자'에 대해서 옹호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그녀들이 남성들의 질서를 '까부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자들(운동권도 열외 없다)의 음담패설에서 여자의 성기를 묘사하는 표현, 그리고 '따먹었다'라는 허무맹랑한 표현들이 너무 싫기도 했고, 언제나 상대적으로 '상상된 여성성'의 감옥에 여성들을 몰아 넣는 그 질서 자체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보통 '고백'을 강요하는데.. 이런 류의 것들이다.
"너 그렇게 말은 해도, 사실 기집애들이 틱틱 대면 좆나 짜증나잖아."
"너 그렇게 말은 해도, 나중에 결혼하면 마누라가 해주는 밥 먹고 싶을 꺼 아냐?"
"너 그렇게 말은 해도, 사실 처녀가 좋잖아?"
여기에 대고 대답을 단호하게 '아니!'라고 해 봤자. 순식간에 '위선자'만 되는 상황이고, 언제나 폐쇄적인 구조에서의 선문답이기 때문에. 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남성 여성주의자들의 노력과 상관없이 여성들이 그 내부로 들어와서 깨부수는 노력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느끼는 여성주의자들은 언제나 '여성의 각성'과 '남성들에 대한 욕'만을 이야기하는 듯하게 보였다. 그리고 공지영도 그런 부류로 생각했기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전, 이나영과 강동원 주연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가 사회에 잔잔한 흐름들을 만들어 냈다. 원작은 공지영이었다. 사실 난 좀 갸우뚱 했는데, 내가 기억했던 2001년 읽었던 공지영은 '전투적 페미니스트'였는데, <우행시>의 공지영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를 테면 내가 기억했던 공지영은 담배 꼬나물고(여전히 담배는 피운단다. 멋죠), 남자의 조인트를 깔것만 같은, 게다가 무신론자에 역사적 유물론에 몰두한 그런 사람이었는데. <우행시>의 공지영의 느낌이라는 것은, '영성'이라는 것과 뗄 수가 없다는 거였다.
그 간극 사이에 많은 작품들이 있었구나 하고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공지영한테 '재수없다'라고 공격하는 이들과 한바탕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없이 따뜻해진 그녀를 느꼈기 때문이다.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운 내공 덕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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